6월 8일 일요일은 임산부가 있는 가족에게는 의미 있는 날인 ‘이누노히(犬の日)’다. ‘개의 날’이라는 뜻이라 어감은 좀 이상하지만, 한국에서 ‘손 없는 날’이라는 의미처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보통 임신 5개월쯤에는 이누노히에 임산부와 가족들이 무사출산기원(安産祈願, あんざんきがん)을 위해 신사를 찾는다. 유명한 신사에는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서 장사진을 이룬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줄을 길게 서는 경우가 있으면, 보통은 맨 마지막에 팻말을 든 사람이 서 있으므로 팻말이 보이면 그 뒤쪽에서 기다리면 된다.
출산용품이나 유아용품 업체에서도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업체에서 나온 사람들이 상품 광고와 함께 큰 비닐 가방을 하나씩 나눠 준다. 그 안에는 기저귀, 분유, 출산에 필요한 여러 샘플 제품들과 광고지들이 가득 들어있다. 신사 입구에 도착할 때쯤 되면 양손 가득 비닐 가방을 든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이럴 때 가장 빠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으니! 포장마차인 야타이(屋台, やたい)다. 야키소바, 붕어빵, 솜사탕, 아이들 장난감 등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사람들을 따라 줄지어 서 있다. 자꾸 뭔가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와 똑같다.
입구에 들어서면 임산부와 가족이 가는 길이 다르다. 임산부는 특별히 마련된 곳에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다 약 20명씩 안내를 따라 신사 내부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무사출산을 기원하는 의식을 하는데, 부적 등을 받아와 출산 때까지 집안에 장식해 둔다. 가족들은 신사 본관 앞에 늘어져 있는 종을 울린 후, 통에 동전을 던져 넣고 손을 합장하며 같은 기원을 한다. 큰 종을 울리는 것은 신을 부르는 의미다. 동전을 던질 때는 적은 금액으로 던져 넣는다. 보통 10엔짜리 한두 개 정도면 적당하다. 이렇듯 이러한 풍습들을 보면 우리의 옛 풍습과 참 닮아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전통을 중히 여기는 일본 사람들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도쿄에서는 닌교쵸에 위치한 수이텐구(水天宮, すいてんぐう)가 유명하다. 수이텐구는 순산의 신을 모신 신사로, 사진에서도 보이듯 개의 동상이 있다. 특히, 동상을 손으로 쓰다듬으면 무사출산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그 표면이 아주 반들반들하다. 닌교쵸에 가면 거리가 잘 유지되어 있고, 특히 사람 얼굴 모양으로 만든 단팥빵 같은 닌교야키(人形焼, にんぎょうやき)도 유명하다.
출산이 끝나고 나면, 아이와 함께하는 외출이 가능해졌을 때 집안에 두었던 부적 등을 갖고 신사에 다시 방문한다. 그리고 무사히 출산한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한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아이의 건강과 바른 성장을 위한 의식을 받는다고 하니, 일본에서 신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워낙 신사라는 존재가 한국에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두드러져 있지만, 일본 전국에 걸쳐 무수히 많은 신사가 존재하고 있으며 순산 기원처럼 가족의 안녕을 바라기 위해 자주 찾는다는 것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