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필리핀에는 상당한 규모의 계단식 논이 있다. 우리나라 남해에도 계단식 논이 있다고 하는데 아직 가보지는 못했다. 주로 필리핀 루손 섬 북중부 산악지대에 있는 편이고, 아무래도 산악지대이다 보니 계단식 논의 형태로 발전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지역은 바나우에. 그중에서도 바타드 마을이 제일 유명한 곳이란다. 그렇다 보니 바나우에와 바타드는 서양인들에게도 유명한 관광 코스로 알려졌다.
바나우에는 마닐라로부터 북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곳에 있다. 한국과는 달리 도로 사정이 매우 좋지 않기에 차로 거의 10~12시간이 걸린다고 보면 된다. 이것도 위험을 무릅쓴 역추월을 틈날 때마다 해야 가능하다는 사실! 그래서 교통 체증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서면 아주 일찍 출발해야 한다.
필자도 새벽 2시쯤 마닐라에서 출발했다. 새벽이 서서히 물러나고 날이 밝아오자 처음 와보는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차장 밖을 계속 바라보았다. 아침은 중간 포인트에서 현지식으로 해결했다. 모든 것이 우리 입맛에 맞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교외로 여행을 왔다는 설렘 때문인지 한 끼 식사로는 그럭저럭 훌륭했다.
드디어 10시간 가량 걸려 바나우에에 도착! 바나우에는 인근에서 그나마 제일 큰 도시였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읍 정도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겠다. 알려진 관광지다 보니 역시 많은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대부분은 목공예품들이었다. 사실 필자는 이곳을 두 번째 방문했다. 지난번에는 사가다를 거쳐 바기오로 돌아오는 여행 루트였기에, 바나우에에서는 아주 잠시 머무르며 계단식 논 풍경을 살짝 맛만 보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아예 계단식 논 한군데만 돌아보기로 작정하고 온 여행인지라 바나우에가 이 여행의 시작점이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바타드라는 계단식 논 마을. 여기는 바나우에에서 산길을 통해 차량으로 두어 시간을 더 달려야 했고, 산길은 정말 험했다. 급기야는 여러 명의 인원과 짐들로 차가 더 전진하지 못하자, 차는 돌려보내고 우리는 걸어야 했다. 여행길이 고생 길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냥 즐거운 마음이 가득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도 있었고 현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가 다 온 것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차로 올 수 있는 최고점이었는데, 여기서부터 바타드 마을로 또 걸어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운이 좋았을까? 한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와 여행객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가 가이드를 해줄 수 있으며 숙소까지 제공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바타드 마을에 거의 하나밖에 없는 숙소의 주인이었다.
아무튼,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로서는 반가운 말이었다. 흔쾌히 아주머니를 따라가기로 했다. 차로는 고지를 올랐는데, 바타드 마을은 저 밑으로 움푹 내려간 분지 같은 곳에 있었다. 내려다보기에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이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런데 아뿔싸! 진짜 고생 길은 여기에 있었다. 산을 내려가는 것도 오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 것을. 내려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었고, 아무리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분명히 가까이 보이는데 말이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