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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특파원]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로 가다

8월은 8.15 광복절이 있는 의미 있는 달입니다. ‘상하이’라는 말을 들으면 ‘상해 임시정부’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학창시절에 수없이 배웠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필자 또한 그러한 세대이며, 최근 연예계에서도 일부 유명인들의 역사 인식이 문제가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는 3.1운동 이후 일본 통칭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하여 1919년 4월 11에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 임시헌장 10개 조를 채택하고, 4월 13일에는 한성 임시정부와 통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 및 선포하였으며, 이후 1945년 8.15 광복까지 상하이(1919), 항저우(杭州, 1932), 전장(鎭江, 1935), 창사(長沙, 1937), 광저우(廣州, 1938), 류저우(柳州, 1938), 치장(1939), 충칭(重慶, 1940) 등지로 청사를 옮기며 광복 운동을 전개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나라 잃은 국가의 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사실 상해 임시정부는 한국에서 상해로 관광 오는 단체관광객의 필수 여행 코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방문객들의 표정을 보면 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을 너무 허름하게, 그것도 일반 주택가와 같은 골목 한편에 너무 초라하게 놓인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표정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필자 또한 몇 번의 방문 때마다 똑같은 감정을 항상 느껴왔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현지 주민이 사는 다세대 주택가의 한 집에 1층과 2층이 임시정부 유적지로 보존이 되어 있고, 그 옆집은 사람이 사는 주택과 상업용 미용실로 되어 있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이 사실입니다. 작년에는 내부 수리로 인해 한동안 개방을 하지 않았는데, 수리 이전과 그리 차이를 못 느낄 정도입니다. 당시 오픈식에 현직 대통령도 오셨다는 한인 지역신문을 보도도 있었고, 내부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친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방문 사인도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임시청사 내부는 3개 층의 구조로, 1층에는 중국의 여느 가정집과 같은 부엌이 있고, 2층에는 김구 선생의 집무실을 비롯한 집무실과, 3층에는 요인 숙소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 3층이지 정말 좁은 곳에서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께서 고생했을지 (직접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짐작이 가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이곳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일반 도로변의 주택 입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라는 간판만 있어서 쉽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소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나 휴대전화 앱을 이용한 항공사진 등을 잘 활용해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밖에, 이 부근에는 길만 건너면 뜻밖에 유럽풍의 바(BAR)가 많은 신천지(新天地)라는 유명 관광지가 있습니다. 젊은 한국 방문객이라면 한 번쯤 들렀다 가기를 권해 봅니다.


WRITTEN BY 김경수

드넓은 중국 대륙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생생히 전달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