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영화에서 슈퍼맨이 석탄을 다이아몬드로 바꾸는 장면 기억하나요?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 비밀은, 고체를 이루는 원자의 배열에 있답니다. 다이아몬드와 석탄(또는 연필심을 이루는 흑연)은 같은 탄소 원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자가 어떻게 배열되느냐에 따라, 하나는 반짝반짝 빛이 나고 단단하며 희귀한 다이아몬드가 되고, 다른 하나는 까맣고 쉽게 부서지는 흔한 흑연이 됩니다.
동영상 : Superman Can Make Diamonds (1:21)
영상 출처 : 유튜브 (http://youtu.be/fR38h4xPfVo)
원자(또는 이온)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고체를 이루고 있는 물질을 결정(結晶, 전문용어로 크리스탈)이라고 부릅니다. 원자 하나를 유리구슬로 생각할 때, 수많은 유리구슬을 3차원 공간에 채워 넣을 방법은 물론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고, 이렇게 유리구슬이 채워지는 방법에 따라 배열된 모양이 다르겠지요. 이 각각의 배열 모양을 결정구조(結晶構造)라고 부릅니다. 지난 호에 규소 고체 내 자유전자를 소개하면서 원자 배열 구조가 나왔었지요. 이것은 이해를 돕기 위해 평면상에 그려 놓은 것이고, 실제로는 규소 원자들이 입체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이 배열된 구조는 다이아몬드와 같답니다.
▲ 다이아몬드 결정구조와 흑연 결정구조
사진 출처 : http://goo.gl/aD3wnA
많은 사람이 있는 광화문 한복판에 혼자 말춤을 추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좀 뻘쭘하겠지요? 그런데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이 말춤을 추고 있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혼자 있을 때의 행동과 여러 사람이 집단으로 모여 있을 때의 행동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원자 내 전자도 마찬가지랍니다. 고립된 원자 내에서와 고체(결정구조)를 이루고 있는 원자 내에서의 전자는 다른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반도체는 고립된 원자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결정구조의 고체 상태로 존재하면서 특이한 전기적 특성을 나타냅니다. 자, 그럼 이제는 대표적인 반도체 물질인 규소가 고체상태에서 어떻게 특이한 전기적 특성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 탐험을 시작해보겠습니다.
▲ 원자도 고립된 상태와 고체(결정구조)를 이룬 상태에서는 다른 차이가 있다?
사진 출처 : http://goo.gl/UiXP4x
먼저, 하나의 규소 원자 내에 있는 전자를 살펴보겠습니다. 양파를 반으로 쪼개볼까요? 몇 층의 껍질이 겹겹이 싸여있는 것이 보이네요. 원자는 양파처럼 몇 층의 껍질이 겹겹이 있는데, 가장 안쪽 껍질은 K각(殼, 껍질)이라고 부르며 전자가 최대 2개까지 채워질 수 있고, 두 번째 껍질은 L각이라고 부르며 전자가 최대 8개까지 채워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껍질은 M각이라고 부르며 최대 18개까지 전자가 채워질 수 있습니다. 물론, 전자가 많은 원자는 더 바깥쪽으로 껍질들이 있으며 껍질 이름은 알파벳의 오름차순으로 정해집니다. 원자핵이 전자를 전기력으로 끌어당기는 형태며, 핵에 가까이 있는 전자들이 더 세게 끌어당겨 지고, 핵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끌어당기는 힘이 줄어듭니다.
▲ 양파 단면과 규소 원자의 모습
사진 출처 : (좌) http://goo.gl/LdW4Ud / (우) 필자가 직접 그린 그림
같은 껍질에 있는 모든 전자가 같은 형태의 궤도로 원자핵의 둘레는 도는 것은 아닙니다. 한 껍질 내에 모양이 다른 전자궤도(電子軌道)가 있으며(예를 들어, 공 모양의 s궤도, 아령 모양의 p궤도, 찌그러진 모양의 sp혼성궤도 등), 궤도별로 전자가 갖는 에너지는 다릅니다. 같은 껍질에 있다면 공 모양의 s궤도에 있는 전자가 낮은 에너지를 갖고 아령 모양의 p궤도에 있는 전자는 높은 에너지를 갖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d궤도 f궤도 등 더 높은 에너지의 전자궤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전자는 매우 복잡한 형태로 원자핵을 돕니다. 이런 다양한 전자궤도들 때문에 원자 또는 분자들이 독특한 성질을 나타내는데, 여기서는 규소의 반도체 특성을 간략히 설명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여기까지만 소개하고 넘어가도록 합니다. 아래 그림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참고만 하세요!
▲ 규소 원자 전자궤도 중 3S궤도와 2개의 3P 궤도(좌), 4개의 SP3 혼성궤도(우)
사진 출처 : http://goo.gl/fiZwcp
필자도 《인터스텔라》 영화를 봤습니다.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계로 순식간에 이동해버리며, 어느 행성에서 잠깐의 시간이 지구에서는 수년이 흘러버리는 설정이 알쏭달쏭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지요. 결국, 우여곡절 끝에 딸에게로 돌아왔지만 딸은 벌써 늙어 임종을 맞이하고 있었고요. 이 영화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스토리의 큰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상대성 원리는 빛을 주연으로, 중력을 조연으로 하여 시공간의 왜곡을 다루고 있지요.
▲ 《인터스텔라》 영화 포스터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 커서 빛조차 그곳을 탈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사물로부터 온 빛을 감각하게 되는데, 이 빛이 나올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사물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블랙홀 내부(즉, 사건의 지평선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절대 알 수 없지요. 블랙홀이 중력으로 빛을 탈출할 수 없도록 가두어 둔다면, 원자에서는 핵이 전자의 탈출을 막고 있는 셈입니다. 블랙홀에서의 중력도 거리에 따라 영향력이 감소하므로, 블랙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하다면 그리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가버리면 절대로 살아 돌아올 수 없음에 유념해야겠지요.
마찬가지로, 원자 내의 전자도 핵으로부터 멀어질수록 핵의 영향력이 감소하여 어느 이상 멀어지면 쉽게 원자를 이탈해 더는 원자핵에 구속받지 않습니다. 아래 그림은, 원자핵에 의해 생겨난 전자의 에너지 우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우물에 빠진 전자는 에너지를 공급해줘야 탈출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블랙홀의 중력에 잡힌 우주선이 강한 추진력을 가해야 빠져나올 수 있듯이 말입니다.
▲ 블랙홀 중력에너지와 전자의 에너지 우물
사진 출처 : (좌) http://goo.gl/Mef3Uc / (우) http://study.zum.com/book/15312
지구 위의 로켓도 마찬가지입니다. 로켓의 엔진이 불을 뿜어야 비로소 지구 중력을 이기고 우주 공간으로 나올 수 있으니까요. 다르게 말하면, 에너지 우물의 밑바닥에 있는 전자는 에너지가 낮은 상태이고, 우물 위로 올라올수록 에너지가 높은 상태입니다. 우물의 밑바닥에 있는 전자에 에너지를 가해주면 우물 밖으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겠지요. 아무튼, 원자 내의 전자들은 보통 에너지가 낮은 궤도부터 채우기 시작해서 에너지가 높은 궤도까지 차례로 채워집니다. 다르게 말하면, 전자는 원자의 안쪽 궤도부터 채우기 시작해 바깥쪽 궤도까지 차례로 채운다는 것이지요. 규소 원자는 총 14개의 전자를 가지고 있으므로, K각에 2개, L각에 8개의 전자를 채우고 나면 4개의 전자가 남아 M각에 4개를 채웁니다. 이 M각에 있는 4개의 전자를 최외각전자라고 부릅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