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규석기시대
“바이, 바이, 바이, 정든 도시여, 굿바이. 나 두고 온 집이 있단다. 라디오, 티비도 없고 신문 잡지도 없고 전화 한 통 걸려 오지 않는 아주 한적한 곳에 논 갈고 밭 가는 나의 진짜 집으로 나 돌아간다. 도시여, 안녕! 누군가가 불렀던 가사처럼 한적하고 자연 속에 묻혀 사는 삶을 동경하지만, 정작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MP3, 디지털카메라,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전자기기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그 편리함이 주는 문명을 중독되다시피 누리고 있습니다. 18,000여 개의 진공관으로 이루어진 빌딩만 한 크기의 전자식 컴퓨터를 최초로 선보인 지 100년이 채 되지 못하여 그보다 훨씬 고성능의 컴퓨터를 손바닥 위에서 손가락 하나로 조종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새해의 메가 트렌드는 입을 수 있는 컴퓨터의 상용화라고 하니, 빠르게 진화하는 디지털 시대를 따라 사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입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더는 사람이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하니, 수십 년 후에는 과연 어떤 디지털 기술이 우리를 놀라게 할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됩니다. 이러한 눈부신 현대문명의 발전은 통신, 컴퓨터, 반도체 산업 등의 전자공학 관련 산업에 의해 가능해졌으며, 그중에서 우리가 몸담고 일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거쳐 현대를 이른바 규석기(硅石器)시대(반도체의 주원료인 규소(Silicon)의 첫 글자를 따 만든 현대용어)라고 부르게 한 반도체! 앞으로 이 필자와 함께 일 년 동안 반도체 탐험을 해보시겠습니다.
첫 시작, 전자의 발견
본격적으로 반도체에 대해 알아보기에 앞서, 전자공학과 반도체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요. 항상 그렇지만, 역사는 재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알아두면 유익하지요.
전자공학(구동력으로서 전력을 이용하는 구성장치, 시스템 또는 여러 장비를 개발하기 위해 전자들의 운동에 대한 영향과 행동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연구하는 공학의 한 분야)은 전자(電子)라고 하는 원자(原子)보다도 작은 미립자(微粒子)의 거동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럼, 전자는 어떻게 발견이 되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윌리엄 길버트(William Gilbert, 1544-1603)는 호박(amber, 나무에서 흘러나온 진 등이 돌처럼 굳어져 윤이 나며 투명하게 된 광물.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를 보석으로 여겨 천으로 열심히 닦았고, 닦을수록 먼지 등이 더 잘 달라붙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는 정전기 때문으로 밝혀졌습니다)을 천으로 문지를 때 발생하는 정전기(靜電氣)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어로 호박을 electrum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전기(electric)와 전자(electron)의 어원이 되었지요. 하지만 전자가 발견된 것은 그보다 훨씬 후인 1897년 4월 30일 J.J.톰슨(Joseph John Thomson, 1856-1940)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는 음전하(陰電荷)를 띠며 원자보다 크기가 훨씬 작은 미립자를 발견하였고, 이 미립자는 훗날에 사람들에 의해 전자(electron)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전자가 현대의 디지털 문명을 활짝 연 주인공이지요.
이제부터 저와 함께 반도체를 본격적으로 탐험할 때 자주 등장할 주인공이니까 잘 기억해 두시길 바랍니다. 길버트의 정전기 연구가 시작된 이후 300여 년간 전기의 특성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여러분이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전기에 대한 모든 지식은 수백 년 동안 흘린 많은 석학의 땀과 눈물의 결실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과학자들의 관심은, 고여있는 정전기(겨울철 다른 사람과 악수할 때 짜릿하고 따끔하게 느끼는 것이 정전기 때문이지요)나 도선 위를 흐르는 전기 현상(꼬마전구와 건전지를 도선으로 연결하면 불이 들어오는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간으로 뛰쳐나가는 전파(電波)의 존재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은 전파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하였습니다. 수학 공식으로만 전파의 존재를 예견했다니 대단하지요.
▲ (좌) 맥스웰 방정식, (우) 헤르츠의 실험장치
왼쪽 그림은 맥스웰 방정식으로, 생김새만 참고하세요. 전파의 존재가 실험적으로 증명된 것은 24년 후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 1857-1894)에 의해서였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전파 발생 장치와 전파 검출 장치인데, 오른쪽의 링 형태는 언뜻 보기에도 안테나 같지요? 맞습니다. 오늘날 무선 통신 기기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이 두 천재적 과학자의 위대한 발견 덕분입니다.
금속과 반도체의 성질
금속은 전기를 잘 통하는 성질을 갖고 있지요. 하지만 온도가 올라가면 전류의 흐름이 방해받게 됩니다. 아래에 보이는 왼쪽 그림을 참고하면, 온도가 올라갈수록 저항이 증가하는 현상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금속과 반대의 성질을 갖는 물질이 발견된 것이지요. 반도체(半導體)라는 개념이 드디어 등장하게 된 의미이기도 합니다. 반도체 현상은 낮은 온도에서는 전류가 잘 흐르지 않다가 온도가 올라가면서 전류의 흐름이 좋아지는 것을 말하는데, 아래에 보이는 왼쪽 그림에서처럼 온도가 올라갈수록 저항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1800년대 초부터 이러한 반도체 현상이 발견되기 시작되었고, 1839년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는 황화은(Ag2S)이 반도체의 특성을 갖는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 (좌) 저항률의 온도 특성, (우) 다이오드 정류 특성의 원리
사진 출처 : www.hellot.co.kr
1874년 브라운은 방연석(황화납(PbS) 결정(結晶)으로 초기 광석라디오의 정류소자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의 정류(整流)작용(금속도선에 전류를 흘려주면 전류의 방향과 상관없이 흐르게 되는데, 정류작용이란 한쪽으로는 전류가 흐르지만 반대방향으로는 전류가 흐르지 않는 것을 말하며 다이오드가 이러한 정류특성을 갖습니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오른쪽 그림에서처럼 자동차가 한 방향으로는 원활하게 흐르지만 반대 방향으로는 전혀 흐르지 못하는 것이 보이실 겁니다. 이처럼, 전류가 한 방향으로는 잘 흐르지만 반대 방향으로는 흐르지 못하는 현상을 정류작용이라고 하지요. 뒤에 설명할 다이오드가 이러한 정류특성을 갖습니다. 그렇게 인류는 1800년대를 보내게 됩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