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는 반도체가 있는 교실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반도체 나라에는 세미 초등학교가 있고 그곳에는 진성 반이 있습니다. 교실 안에는 학생 수와 의자 수가 같아서 모든 학생이 앉아 있고, 빈자리나 자리 없이 서 있는 학생은 없습니다. 곧 엄한 선생님이 들어오시니 학생들이 꼼짝 못 하고 제자리에 앉아 공부합니다. 바깥 복도에 돌아다니는 학생이 아무도 없군요. 이번에는 덜 엄한 선생님이 들어오셨는데 아직도 학생들은 선생님을 무서워하며 아무도 자리를 떠나 돌아다니질 않네요.
다시 시간이 바뀌어서 순한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수업을 지루해하는 한 학생이 슬그머니 일어나 복도로 나가 돌아다닙니다. 교실에는 빈 의자가 하나 생겼고, 복도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학생이 하나 생겼네요. 이윽고 또 한 학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고 합니다. 빈 의자가 늘어날수록 학생들의 마음은 왠지 불안해집니다. 아무리 순한 선생님이지만 엄연히 수업시간이거든요.
복도에 돌아다니던 학생이 슬그머니 들어와 빈 의자에 앉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수업에 지루해진 학생들이 한 사람씩 자리를 비우고 복도로 나가네요. 그와 동시에 복도에 돌아다니던 학생들이 들어와 빈자리에 앉습니다. 아무튼, 교실에 빈 의자는 항상 하나만 있네요.
시간이 또 바뀌어서 정말 순한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아까보다는 복도에 나가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덜 불안해합니다. 교실 안에는 빈자리가 두 개 있고 평균적으로 두 명의 학생이 복도를 돌아다니는군요. 복도를 돌아다니는 학생과 교실 내의 빈 의자 수는 선생님이 순한지 엄한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학생을 전자로 생각해 볼까요? 교실은 가전자대, 복도는 전도대,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를 돌아다니는 학생은 자유전자, 그리고 빈 의자는 정공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자유전자가 하나 생길 때마다 정공이 자동으로 하나 생기는군요.
눈치채셨나요? 그렇습니다. 위에 설명한 진성 반은 진성반도체입니다. 진성반도체는 실리콘으로만 이루어진 반도체로서 실리콘 원자 내의 최외각전자 4개가 모두 공유결합에 붙들려 있어 0K(절대온도를 말하며, 0K는 섭씨로 영하 272.15도입니다)에서는 모든 전자가 가전자대에 존재하고 전도대에는 전자가 없어서 전도성을 띠지 못하므로 전류가 흐를 수 없습니다.
여기에 열에너지가 공급되면 일부의 전자(밴드갭 이상의 에너지를 얻은 전자)가 결합을 끊고 자유전자와 정공의 쌍(결합을 끊은 전자가 자리를 이탈하면 당연히 빈자리가 생기겠지요? 그래서 자유전자와 정공은 쌍으로 생성되는 것입니다)을 형성합니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이탈한 전자를 자유전자라고 하고, 전자가 이탈한 빈자리가 정공이므로, 당연히 자유전자 수와 정공 수는 같아야 합니다.
전자가 빈자리를 만들고 빠져나가는 것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서 늘 원상으로 돌아오려는 경향이 있겠지요. 즉, 돌아다니던 자유전자가 빈자리를 채우게 되는데, 이를 재결합이라고 부릅니다.
일정한 온도에서는 자유전자와 정공의 쌍이 생성되는 율(率)과 결합하는 율이 같아서 자유전자와 정공의 양이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공급되는 열에너지가 높아지는 것이므로, 생성되는 자유전자(전도대 내에 존재하며 위 그림에서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와 정공(가전자대에 존재하며 아래 그림에서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의 쌍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세미 초등학교에는 불순물 반도 있습니다. 진성 반과는 달리 불순물 반에는 교실 안에 의자에 앉아 있는 정규학생이 있고, 몇 명의 청강생이 있습니다. 청강생은 의자가 없이 복도에 서서 창을 통해서 수업을 듣네요. 엄한 선생님이 수업하는 동안에는 정규학생은 모두 꼼짝 않고 수업에 열중하며 일부 청강생은 창가를 떠나 복도를 돌아다닙니다. 복도에 돌아다니는 학생은 일부 청강생을 제외하고 정규학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간이 바뀌어서 조금 덜 엄한 선생님의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정규학생은 모두 꼼짝 않고 수업에 열중하고 있지만, 청강생은 모두 창가를 떠나 복도를 자유롭게 돌아다닙니다. 청강생들은 선생님을 그리 무서워하지 않은 것 같네요.
시간이 또 바뀌어 순한 선생님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청강생 모두가 창가를 떠나 복도를 자유롭게 돌아다닙니다. 일부 정규학생도 자리를 비우고 복도에 나와 돌아다닙니다. 역시 수업시간이라서 마음에 부담을 느낀 정규학생 일부가 자리에 들어가 앉고, 수업이 지루해진 다른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갔습니다. 교실 안에는 평균 하나의 빈 의자가 있습니다.
다시 시간이 바뀌어서 정말 순한 선생님의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더 많은 정규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를 돌아다니고(청강생은 모두 자유롭게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교실 안에는 평균 두 개의 빈 의자가 보이네요. 청강생들은 역시 모두 창가를 떠나 복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복도에는 몇 명의 정규학생과 그보다 많은 수의 청강생들이 돌아다니네요. 진성 반과는 달리 불순물 반은 복도에 돌아다니는 학생 수가 주로 청강생들이 많으므로 선생님이 순한지 엄한지 아닌지보다는 청강생 수에 더 의존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알쏭달쏭한 반도체의 세계, 여러분에게 쉽게 다가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다음 호에 불순물 반의 이야기로 계속 이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