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이미 알아본 바와 같이, 실리콘을 기반으로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여 반도체의 성능을 높이는 방법은 결국 궁극에는 한계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실리콘이 아닌 다른 물질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번 호에는 TV나 인터넷에서 들어본 듯한 것 중에 논의가 많이 되는 두 가지, 실리콘보다 성능이 좋다는 ‘그래핀 (Graphene)’ 이라는 물질과 획기적으로 연산 속도가 빠르다는 ‘양자 컴퓨터 (Quantum computer)’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실리콘 반도체의 한계
반도체 실리콘의 원료가 되는 규소는 지구 상에서 산소 다음으로 많이 차지하는 물질이다. 우리 주위에 보이는 흙 대부분의 구성이 실리콘의 원료인 ‘규소(Silicon)’다. 지금까지 50여 년간 스위치 역할을 하는 반도체 트랜지스터는 실리콘 위에 만들어져 왔는데, 그렇다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었다. 그저 구하기 쉽고 값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값싸고 구하기 쉬운 실리콘 반도체라 할지라도 점점 성능 개선에서 구조적인 한계를 보이게 되었고, 이제는 많은 과학자가 실리콘보다 더 성능이 좋아질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중이다.
그래핀
탄소가 주성분이고 연필심을 만드는 원료인 흑연을 의미하는 ‘그래핀(Graphene)’은 그래파이트(Graphite)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원자의 구조도 연필심과 같으며, 벌집 같은 육각형 형태의 면이다. 이 육각형 구조의 면 그래핀을 여러 층으로 쌓아 놓으면 연필심 구조인 흑연이 된다. 그래서 처음 이 그래핀이 발견된 방법도 매우 단순했다. 스카치테이프에 흑연을 붙이고, 이렇게 붙은 흑연에 또 다른 테이프로 붙였다가 떼어 내기를 반복하다 보면 여러 층이었던 흑연 탄소 구조가 어느 순간 한쪽 테이프에 한 층짜리 흑연 구조로 남는데, 이것이 바로 그래핀이다.
그래핀의 두께는 약 0.2nm(nanometer, 나노미터)로,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물질 중에 가장 얇은 두께라 한다. 그래서 이것을 백만 장 쌓아도 그 두께는 겨우 0.2mm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A4용지 한 장의 두께가 약 0.1mm라고 하니, 겨우 A4용지 두 장 두께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
▲ <사진1> 흑연, 풀러렌, 탄소 나노 튜브, 그래핀
탄소는 결정 구조 및 형상에 따라 여러 이름을 가진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탄소들이 넓게 펼쳐진 한 장의 구조를 그래핀이라 하고, 그 그래핀을 돌돌 말아 원통으로 만들면 ‘탄소나노 튜브(Carbone Nano tube)’가 되며, 공처럼 둥글게 말려 있으면 ‘풀러렌(Fullerene)’이라고 한다. 또한, 탄소가 흑연처럼 면으로 된 2차원 구조가 아닌 3차원 구조로 형성되면 값비싼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얇은 두께의 흑연이라 할 수 있는 그래핀이 왜 주목을 받는 것일까? 지구 상에서 두 번째로 전기가 잘 통하는 금속인 그래핀은 구리보다 1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한다. 그래서 실리콘보다 전자 이동 속도가 100배 이상 빠르다. 게다가 다이아몬드보다 열 전도성이 2배 이상 높다. 강도는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지만, 두께가 매우 얇아 부러지지 않고 180도 휠 수 있으며 빛을 98% 통과시킬 정도로 거의 투명하다.
그래서 이 같은 성질들을 이용하면 휘어지는 화면이 가능해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LCD 제작 회사들이 그래핀에 더 많은 연구와 투자를 한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그래핀 기술 관련 원천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근래 들어 구글 안경이나 갤럭시 기어와 같은 ‘입는 전자 제품(Wearable device)’이라는 말과 함께 ‘휘어지는 디스플레이(Display)’를 채용한 제품이 조만간 출시된다는 뉴스를 보기도 하는데, 이들 대부분이 그래핀을 이용한 제품들이라 보면 된다.
그동안 반도체 재료로 사용되던 실리콘은 아래 표에서 보듯, 재료 자체의 저항이 작지 않아서 전기를 흐르지 않게 하는 것보다는 특정 조건에서 전기가 잘 흐르게 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래핀은 위 설명에서처럼 전기적 특성이 거의 금속 성질과 비슷해 재료 자체는 전기가 매우 잘 흐르는 도체에 가깝다. 그래서 실리콘과는 달리 오히려 특정 조건에서 전기를 흐르지 못하게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 <사진2> 재료별 전기저항
앞으로 반도체 분야에서 그래핀을 이용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서 이처럼 뛰어난 전기 및 열 전도성을 가진 그래핀에 트랜지스터 기능을 만들 수 있다면, 실리콘 위에 트랜지스터를 만든 것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래핀이 차세대 반도체 재료로서 주목받는 것이다. 반도체 과학자들은 빠르면 2020년에 그래핀을 활용한 반도체가 개발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글쓴이 / 기술연구소 개발2팀 김윤주 부장(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