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컴퓨터
원자는 물질의 가장 최소 기본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원자들이 합쳐져 분자가 되고, 분자들이 모여 손에 잡히는 물질이 된다. 원자 크기는 너무 작아 우리 회사에 있는 고배율 현미경이나 전자 현미경으로도 관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원자는 얼마나 작을까. 원자 하나를 1억 배 정도 크게 만들면 탁구공만 하다고 하고, 이 탁구공을 1억 배만큼 키우면 그 크기가 지구만 하다고 한다. 그러하니 원자의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작은 소립자 세계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자연 현상과는 다른 현상을 보인다. 이를 물리학에서는 일상적인 거시적 세계를 설명하는 ‘고전역학’과 소립자 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으로 구분하는데, 양자의 이해하기 어려운 많은 현상 중에 양자 컴퓨터는 ‘중첩(또는 겹침, Quantum superposition)’ 현상과 ‘얽힘(Entanglement)’ 현상을 이용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대학 전공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양자 컴퓨터를 이해하는 데는 꼭 필요한 내용이기에 간단하게 설명해보겠다.
양자 중첩
첫 번째, ‘양자 중첩’이란 한 입자가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입자가 어느 곳에 어느 정도의 확률로 있을 거라고 짐작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그 어느 곳들에 그 확률만큼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고양이를 예로 들곤 한다. ‘어떤 상자에 고양이가 한 마리가 있는데, 살아 있을까? 죽어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일상적인 고전역학에서는 그 상자 안을 들여다보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살아 있을 확률과 죽어 있을 확률이 각각 50%라 고양이는 반드시 죽어 있든가 살아 있든가 둘 중의 하나여야 한다. 양자 역학에서도 각각 50%의 확률이라는 점은 같다.
하지만 살아 있거나 죽어 있어야 하는 두 가지 중의 하나 확률이 아니고, 상자 안에는 살아 있는 고양이와 죽어 있는 고양이가 각각 그 확률로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죽은 듯 살아 있는 혼수 상태의 한 마리 고양이가 아니고, 죽어 있을 확률의 고양이 한 마리와 살아 있을 확률의 고양이 한 마리가 각각 공존한다고 본다.
말도 안 되는 말장난 같지만, 실제 양자역학의 물리학 과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럼 상자를 열어 확인하면 어떻게 될까? 그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아주 작은 양자를 아주 큰 고양이에 비유해, 상자를 열어 그 상태를 확인한 후의 설명은 또다시 어려운 설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여하튼, 세상 무엇이든 어느 한 가지로 반드시 결정되어 있어야 한다고 배운 고전역학의 개념으로는 양자역학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미 과학자들이 이러한 현상을 실험적으로 증명했으니, 우리가 사는 거대 세계와는 달리 매우 작은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믿기 어려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양자 얽힘
두 번째 ‘양자 얽힘’은 다행히도 양자 중첩 현상보다는 다소 이해가 쉽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떠올려보자. 도민준에게 빨간색과 파란색의 구슬이 있다. 도민준이 천송이의 눈을 가린 채 양손에 구슬을 각각 하나씩 쥐여준다. 그리고 천송이는 눈을 뜨고 오른손에 쥐어진 구슬을 보았는데 빨간색이었다. 그럼 왼손에 있는 구슬은 펴보지 않아도 파란색이 될 것이다. 이처럼 하나가 결정되면 관계가 얽힌 나머지도 저절로 결정되는 현상을 ‘양자 얽힘’이라고 한다.
다시, 도민준이 지구를 떠나 그의 별로 돌아가면서 사랑의 징표로 천송이에게 구슬을 하나 주었다. 도민준이 떠난 후 천송이가 자신의 구슬 색깔을 확인하는 순간, 도민준이 지구 밖 수백만 광년 멀리 떨어진 별로 가더라도 그가 가져간 나머지 구슬 색깔은 자동으로 결정된다. 만약에 이처럼 서로 관계가 얽힌 구슬이 두 개가 아니고 좀 더 많다면, 동시에 그만큼의 정보들이 순식간에 결정될 것이다.
자, 이번에는 어려운 물리 이야기를 떠나 다시 양자 컴퓨터 이야기로 돌아오자. 지난 2월호 사보에서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 업체인 삼성이 새로운 반도체를 개발했을 때 발표하는 광고 문구와 최고 논리 반도체 생산 업체인 인텔이 발표하는 광고 문구는 차이가 있다고 언급했었다. 삼성은 “몇 년 치 신문을 이 손톱만 한 반도체에 다 넣을 수 있습니다.”라는 저장 용량에 관한 광고를 하지만, 인텔은 “인간이 수백 년 동안 계산해야 할 수식을 이 반도체는 단 몇 초 만에 계산합니다.”라는 계산 속도에 관한 광고를 한다. 양자 컴퓨터인 반도체는 우리에게 이론적으로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획기적인 성능을 제공한다.
저장 용량
첫 번째, ‘저장 용량’을 살펴보자. 지금까지 실리콘 반도체는 제한된 공간에서 스위치 역할을 하는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여가면서 그 저장 용량을 늘려왔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것은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고 대체로 10년 이내에 한계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양자를 반도체 소자로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양자 반도체를 개발했다 해도 실제 저장 소자로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양자에 정보를 입출력하기가 쉽지 않고, 현재 기술로는 원자 내 저장된 정보가 오랫동안 지속하지 않는다. 저장 매체라면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장기간 저장해야 하는데, 지금은 물론 가까운 미래에도 양자 반도체를 이용해 저장 매체로 이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양자 반도체가 성공적으로 개발된다면, 이론적으로 양자의 크기만을 따져봤을 때 실리콘 반도체와는 비교 안 될 정도로 단위 면적당 엄청난 저장 용량을 갖게 될 것이며, 그러면 개인용 컴퓨터 크기 안에 대도시의 모든 실리콘 컴퓨터 정보를 다 집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계산 속도
두 번째, ‘계산 속도’를 살펴보자. 양자 컴퓨터는 저장 용량보다는 빠른 계산 속도 때문에 주목받는다. 이 양자 컴퓨터의 계산 속도는 앞서 이야기한 양자의 중첩과 얽힘 현상을 이용해 기존의 실리콘 반도체 컴퓨터와는 비교 안 될 정도로 빠르게 계산할 수 있다.
실리콘 반도체의 최소 저장 단위는 비트(bit)로, 0(off) 또는 1(on)로 표현되는 2진수다. 양자 반도체도 1 또는 0의 2진수로 표현되는 값을 갖지만, 최소 저장 단위는 양자를 의미하는 영어 ‘Quantum’의 첫 글자를 앞에 붙여 ‘쿼비트(Qua-bit)’ 혹은 ‘큐비트(Q-bit)’라고 한다. 실리콘 반도체 컴퓨터는 8비트라 해도 비트별로 차례로 계산하지만, 양자 반도체 컴퓨터는 8쿼비트를 중첩과 얽힘 현상을 이용해 한 번에 계산해 낸다.
예를 들어, 두 팀으로 나누어 각 한 줄로 서서 맨 앞사람부터 한 명씩 1대 1로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은 탈락하고 다음 사람이 다시 가위바위보를 해 이긴 사람은 계속 나아가며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사람 수가 가장 많은 팀이 이기는 게임이 있다고 하자. 이렇게 한 사람씩 가위바위보를 해서 결정하는 것이 실리콘 반도체 컴퓨터라면, 양자 컴퓨터는 모든 사람을 1대 1로 마주보게 하고 동시에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 번에 승자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훨씬 빨리 게임의 승패를 가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논리로 하면, 양자 컴퓨터는 실리콘 반도체 컴퓨터보다 2의 비트 수 제곱만큼 계산이 빨라지게 된다. 8쿼비트의 경우 2의 8 제곱 배, 즉 256배만큼 빠른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32쿼비트면 2의 32 제곱 배로 43억 배 빨라지며, 지금 시중에 판매되는 64비트 펜티엄 컴퓨터와 같은 64쿼비트 양자 컴퓨터라면, 이론적으로 1,800경(180만 조) 배만큼 빠른 계산을 할 수 있다.
사실 ‘조’나 ‘경’은 얼마나 큰 숫자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냥 32쿼비트 양자 컴퓨터만 가지고 보자. 가령, 전 세계 60억 인구 중에 30억 명이 펜티엄 컴퓨터를 한 대씩 가지고 있다고 하자. 32쿼비트 양자 컴퓨터 한 대가 전 세계에 있는 이 30억 개의 펜티엄 컴퓨터를 다 합쳐 계 산하는 속도보다 빠르다고 한다면 양자 컴퓨터의 성능이 대충 가늠될지 모르겠다.
▲ <사진> 세계 최초의 상용화 양자 컴퓨터
아직 양자 컴퓨터가 모든 면에서 실리콘 반도체 컴퓨터보다 항상 우월한가에 대해서는 과학자들 사이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많은 입력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대용량 컴퓨터의 기능에서는 실리콘 반도체 컴퓨터보다 월등한 성능을 발휘하리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양자 컴퓨터는 지금 어느 수준까지 와있을까? 2011년 캐나다의 한 벤처 기업에서 뒤의 사진과 같은 ‘D-Wave’라는 양자 컴퓨터를 만들었고, 곧 미국 군수업체인 록히드마틴에서 1,000만 달러(한화로 110억 원 상당)에 이것을 사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양자 컴퓨터는 아직 완벽하다곤 할 수 없어서, 아쉽지만 아직은 개발 단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게다가 양자 컴퓨터는 기존 실리콘 반도체와 다른 컴퓨터 언어 체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므로 이에 걸맞은 프로그램도 개발해야 한다.
세계 각국은 양자 컴퓨터 개발에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자하고 있다. 개발만 된다면, 엄청난 성능을 가진 양자 컴퓨터는 세상의 그 어떤 복잡한 암호나 비밀번호도 단 몇 분 만에 풀어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를 만들어 낸 나라가 가장 먼저 세계 어디에서나 전산 시스템도 해킹할 수 있고, 그 나라의 모든 정보를 다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1947년 반도체가 처음 개발되고, 1961년 집적 회로가 처음 상용화된 후, 1970년 말에야 겨우 초보적인 8비트 개인용 컴퓨터가 나왔고, 거의 25년이 지나 1980년대 중ㆍ후반쯤 본격적으로 개인용 컴퓨터의 대중화 시대가 열린 점을 고려한다면, 2040년 안에 일반인도 사용 가능한 수준의 양자 컴퓨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어떤 과학자는 2020년이면 개인용이 아닌 여전히 사용에는 제한적인 수준이겠지만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양자 컴퓨터의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인공 지능을 가진 컴퓨터는 물론이고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가상 현실 세계가 우리 곁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실로 과학 기술의 발전은 경이롭다 못해 때로는 두려움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그동안 세 번에 걸쳐 반도체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해보았다. 처음에는 누구나 읽어도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쉽게 쓰고자 했지만, 내용 자체가 어려워 고민하며 많은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반도체의 흐름 자체가 워낙 복잡해지고 개발 또한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쉽게 풀어쓴다 해도 내용이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모쪼록 사우와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 기술연구소 개발2팀 김윤주 부장(前)